Lee Han and Jung Gam Descend Along Baekdu Daegan
It is said that in ancient Silla Dynasty, Lee Han and Jung Gam spent thirty years learning geomancy from the Baekdu Mountain deity. Finally achieving enlightenment, the two decided to descend the mountain. As they descended Baekdu Mountain, they spoke, "Let us use our skills to find the best place in the land of Samhan for our descendants to prosper. Wouldn't we then become the top nobles of Samhan?" Descending along the ridges of Baekdu Mountain, they passed through Gaemagowon, Duryusan, Maseongryeong, and finally reached the peak of Geumgangsan, Cheonhajeolseungbiryeong.
Observing the world and interpreting the principles of Yin and Yang and the Five Elements, they marveled at the peaks of Geumgangsan and continued their journey to Seoraksan, Odaesan, and Taebaeksan. Crossing Sobaeksan, they admired the Bonghwangbawi and Daejangjeil Dongcheon of Soryisan. Passing through various peaks and valleys, they reached Cheonhwangbong of Sogrisan. They continued their journey through various mountains and valleys until they reached Manbokdae.
Baekdu Daegan Reverses Its Course
Following the energy of the Baekdu Daegan, Lee Han and Jung Gam traced their steps back along the ridges of Geumgangsan, observing various peaks and landmarks. They followed the energy flow of the Five Elements, passing through different peaks and valleys until they reached Manbokdae, symbolizing the harmony of the elements.
Continuing their journey along the Geumnam-Honam main vein, they traveled from Yeongchuisan to Juhwasan. They encountered various peaks and landmarks, each symbolizing different aspects of nature and energy flow.
The Dragon Vein of Jeonju-Wanju from Mandoksan to Geonjis
Following the mountain ridges, they reached Mandoksan, where they decided to divide the land between them. They engaged in a divination contest, and Lee Han emerged victorious, claiming a spot for his tomb, which became known as Jogyeongdan.
The legend of Jung Gamrok began with his lamentations about the future and the rise of the Lee family. The story of the Jeonju Yi family's rise to power started with Lee Han's actions and the establishment of Jogyeongdan.
The Jeonju Yi family's lineage, starting with Lee Han, established Jogyeongdan as a sacred site, embodying the energy of kingship. Despite the challenges faced by the family over the centuries, the legend of Jogyeongdan continued to inspire generations.
The Origin of Jung Gamrok at Cheonmasan
Cheonmasan, along with Geonjis, became the legendary lands associated with the Jeonju Yi family's rise to power and the stories of Jung Gamrok. These mountains symbolize the foundations of the five-hundred-year reign and the eight-hundred-year reign, showcasing the rich history and legends of the region.
Exploring the legends and history of these mountains, one can witness the deep-rooted cultural significance and the tales of kingship that have shaped the region for centuries.
On May 12, 2026, at dawn, from Girin Pavilion Taehwajeon,
Writing from the first source of Tongsinji, Wontongsan, the sacred mountain, Seolsan.

천년향화 오백년왕업지지 건지산과 삼천년향화 팔백년왕업지지 천마산의 이한(李翰)과 정감(鄭鑑)의 전설
이한과 정감이 백두대간(白頭大幹)을 따라 내려오다
옛적 신라시대에 이한(李翰-李沁)과 정감(鄭鑑) 두 사람이 백두산에서 백두신인으로부터 풍수법술을 삼십년에 걸쳐서 익혔다고 한다. 마침내 도를 이뤄 신안이 열린 두 사람은 하산하게 되었다. 그 발걸음으로 백두산을 내려오면서 말하기를 “우리가 얻은 재주로 삼한 땅의 제일의 자리를 찾아서 우리 후손들의 후일을 도모하세. 그리하면 삼한의 최고의 갑족이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말한 두 사람은 백두산의 연지봉의 산줄기를 따라서 내려가니 개마고원을 따라서 두류산으로 내려오고 마식령에서 숨을 고르고 추가령을 넘으니 아래두류산 이어지고 마침내 천하절승의 금강산 비로봉에 이르렀다.
만물상을 바라보며 천지우주 음양오행의 이치를 설파하고 논하면서 금강산 일만이천봉 봉우리를 감상하며 내려와서 설악산 올랐다가 오대산에 들렀다가 대관령을 넘어오니 두타산의 명당보고 함박산을 지나 태백산 장군봉에 올랐도다.
구룡령을 넘어서니 소백산 국망봉의 봉황바위 돼지바위 구경하고 비로봉에 올랐으니 양백이 펼쳐놓은 천하절승 맥을 따라 죽령을 넘어가니 월악산이 자리했다. 주흘산의 누워 있는 와불(臥佛)보고 새재를 넘어가니 희디흰 희양산(曦陽山-999m)이 자리했네. 굽이굽이 화양구곡 돌아들어 청화산(淸華山)에 닿았더니 우복동천(牛服洞天) 펼쳐있고 용화를 지나 문장대에 올랐구나. 문장대 세 번 오르면 극락왕생한다는데 춤을 추며 기기묘묘(奇奇妙妙) 봉을 지나 속리산 천황봉에 닿았구나. 한강과 낙동강 금강으로 흐르는 물길 보고 아홉병풍 펼친 구병산(九屛山)과 화령을 지날 적에 낮은 고개 사증과 팔항을 거느리고 괘방령(掛傍嶺)을 거쳐서는 추풍령(秋風嶺)을 넘었구나. 직지인심(直指人心) 황악산 지나 달려가니 충청 경상 전라도가 만나는 삼도봉(三道峰) 거쳐 만리강산 춤을 추며 대덕산에 올랐다가 덕유산(德裕山-1614m)에 닿았으니 삿갓봉에 남덕유산(南德裕山-1507) 함양덕유산과 장수덕유산이 봉긋하여 쌍봉을 이뤘구나. 육십령을 넘어드니 영취산이 맞이한다. 백운산을 넘어들고 봉화산이 맞이하니 시루봉, 아름다운산 가산, 모래재를 넘어서니 고남산(高南山)이 맞이한다. 지리산의 문을 여는 연재(開峙-女院峙)에 당도하니 주지암(住智巖)에 지리산 산신령이 맞이하니 바둑한판 두고서 일어서니 수정봉이 반겨 맞이하고 방장제일동천(方丈第一洞天)의 구룡폭포 아홉 “쏘”에 아홉 마리 용이 맞이한다. 덕음산을 거쳐 노봉마을 사이 낮은 고개 논두렁으로 걸어가니 윗 고리봉(環峰-1305m)이 이어지고, 정령치(鄭嶺峙-1172m)로 따라가니 제이만복대가 맞이하고 마침내 만복대(萬福臺-1438m)에 닿았구나.
아랫 고리봉(環峰-1248m)이 이어지고 성삼재(聖三峙-1100m)가 열렸구나. 종석대를 거쳐 지리삼봉 노고단(老姑壇-1507m)에 닿았구나. 돼지령 임걸령을 거쳐 노루삼거리에서 옆으로 솟은 봉은 지리이봉 반야봉(般若峰-1732m)이 놓여있네. 날라리봉(三道峰-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지나 화개재를 넘어서면 토끼봉이 나타난다. 연하천을 지나 벽소령을 지나들면 지리산의 연봉따라 형제봉 칠선봉 선비샘을 지나면 신맞이 산 영신봉(靈神峰-1652m)에 닿았구나. 세석평전을 지나면 촛대봉 연하봉 이어지고 장터목에 닿았구나. 제석봉(帝釋峰-1808m)을 거쳐들면 하늘과 통하는 통천문(通天門)을 지나 지리산의 제일봉인 상상봉 천왕봉(天王峰-1915m)에 닿았도다.
백두대간이 회룡고조(回龍顧祖)하여 되돌아오다.
백두대간을 종주한 두 사람은 지리산의 기운이 되돌아서 오는 회룡고조(回龍顧祖)의 기운따라 되돌아서 오는 맥을 따르니 지리방장두류의 오대주봉이
지리방장두류의 오대주봉 천왕봉 화성염정(火星廉貞)
지리방장두류의 오대주봉 영신봉 토성거문(土星巨門)
지리방장두류의 오대주봉 반야봉 금성무곡(金星武曲)
지리방장두류의 오대주봉 노고단 수성문곡(水星文曲)
지리방장두류의 오대주봉 만복대 목성탐랑(木星貪狼)
오행연주상생목성자기제좌탐랑만복대(萬福臺)
오행연주상생(五行聯珠相生) 곧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 금생수(金生水) 수생목(水生木)으로 이어지는 맥을 따라서 되돌아와서 개령사(開嶺寺)가 있었던 정령치(鄭嶺峙)를 넘어 윗 고리봉을 거쳐 덕음산과 수정봉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주지봉 주지암에 이르러 다시 한 번 바둑을 두고 연재를 열고 되돌아 고남산에 올랐다가 아름다운산 가산과 시루봉을 거쳐 봉화산에 이르고 백운산을 넘어 영취산에 이르렀다.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장안산~주화산)을 따라 달려오다.
영취산의 한 줄기가 서쪽으로 뻗어가니 무룡치(舞龍峙)를 넘어 장안산(長安山-1237m)을 이뤘으니 백두산에서 달려오는 산줄기 춤을 추고, 지리산 회룡고조 달려오는 산줄기 춤을 추고 장안산 뻗어가는 산줄기 춤을 추니 이곳이 삼무룡(三舞龍) 만나는 지점, 장안산을 따라 달려가니 사두봉이 펼쳐있고 수분치로 이어지니 신이 춤추는 신무산(神舞山)의 뜬봉샘이 맞이한다. 대성고원 올라 팔공산에 이어지니 백리 지리산 주줄기가 펼쳐있고 무등산이 반겨한다. 와룡산을 지나 성수산에 이어지니 이곳에 섬진강의 발원지 데미샘이 있다. 그러하니 이곳이 전라도의 지붕이자 물의 발원지라. 가름내를 건너 마이산에 도착하니 기암으로 이룬 두 봉우리 암줄과 숫줄에 비녀를 꽂았으니 그 기운이 이어짐이 기걸(奇傑)차다. 마이산에 도착한 두 사람 얼싸안고 춤을 추며 산 이름을 바꿨으니 속금산(束金山) 해동의 동방나라 우리나라 기운인 목(木)기운을 해치는 금(金)기운을 묶어놓고 다시금 달려가니 부귀산(富貴山) 이어지고 오룡치(五龍峙)를 넘어서니 주화산(朱華山)이 이로구나.
만덕산(萬德山)에서 건지산(乾止山)까지 이어진 전주완주의 용맥
모래재를 따라 이어진 산줄기를 따라가니 사자산 만덕산(萬德山-762m)에 이르렀구나. 국사봉으로 달려가는 호남정맥을 버리고 한줄기를 따라가니 먹방산 두리봉이 이어지고 중바위산 기린봉(麒麟峰-271m)에 닿았구나. 인후동을 따라 도당산(都堂山)에 이어지고 손사룡(巽巳龍)을 만들면서 건지산(乾止山-98m)과 천마산(天馬山)에 닿았으니 이곳에서 두 사람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가 삼한제일의 땅을 찾았구나.” 한 자리는 천년향화지지(千年香火之地) 오백년 왕업의 터, 또 한자리는 삼천년향화지지(三千년香火之地) 팔백년 왕업지지 두 자리를 나눠 갖기로 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구나. 하지만 서로 먼저 발복하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도술시합을 하였다. 마침내 내기에서 이긴 이한(李翰)이 차지한 자리에 자신의 무덤을 쓰니 경사스러움의 시작이 되었다고 하는 이름 조경단(肇慶壇)이 되었구나.
도술내기에 진 정감(鄭鑑)이 울면서 말하기를 “자네는 좋겠네, 자네는 좋겠네, 이제 오백년이 지나면 자네의 자손이 왕업을 일으켜 삼한의 주인이 되겠구나. 그리고 오백년 왕업 이십팔대군왕(二十八代君王-27명의 왕과 추존왕)을 배출하겠구나. 이렇게 천년의 세월이 흐르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네. 내 자손이 그 후에 어찌될지~!” 이리하여 전주이씨 조선 오백년(519년) 왕업이 태어났고 이리하여 정감록(鄭鑑錄)의 전설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서룡행우(瑞龍行雨)로 불리기도 하고 상제봉조(上帝奉朝)로 이야기되기도 하며 장군출진(將軍出陳)의 명당으로도 불리는 전주 조경단은 고려시대 내내 목자득국(木子得國-이씨가 왕이 된다네)의 근원지가 되었다. 특히 무신정권의 한사람인 이의방(李義方)이 전주이씨였다. 곧 이성계의 방계선조이다. 이의방의 동생 이린(李璘)은 문신이었다. 하지만 이의방의 몰락은 그의 몰락이기도 했다. 그래서 전주로 유배되었거나 다시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 이린-이양무-이안사-이행리-이춘-이자춘-이성계로 이어진다. 목자득극(木子得國)의 오백년은 결코 순탄한 역사가 아니었다.
전주이씨 족보에는 조경단 명당자리를 잡은 사람이 이한 스스로 잡은 것이 아니라고 되어 있다. 3세 이천상이 중국으로 가서 풍수지리를 익히고 돌아와 전주의 왕기가 서린 자리에 묘를 쓰고는 이 자리는 어떤 역경이 오더라도 절대 옮기지 말라고 유언한 자리로 적혀있다. 이러하든 저러하든 모두가 전주이씨 시조 이한의 단인 조경단은 왕기를 머금은 명당자리라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고려시대 내내 주목받는 자리이니 고려의 왕씨들도 가만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사단이 바로 이의방의 몰락에서 찾아왔다. 고려왕실에서는 목자득국(木子得國)의 화근인 조경묘를 파헤치기로 하였다. 전설로는 갑사 백 명을 보냈다고 한다. 그 때에 천둥벼락이 쳐서 갑사들을 죽이고 삼일밤낮으로 큰 비가 내렸다고 한다. 이 비로 인해 지형이 바뀌고 덕진 방죽이 생겼으며 묘지는 깜쪽 같이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명당은 스스로를 지킨다고 했다. 이렇게 숨어버린 명당을 찾고자 조선의 왕들은 노력하였다. 하지만 누구도 이 조경묘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황제 때에 전주 덕진의 건지산에서 나무하던 나무꾼이 지석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조사하고 부랴부랴 만들어진 조경단은 1899년에야 조성되었다. 그래서 묘(墓)가 아니라 단(壇)이 된 것이다. 고종의 어필로 적힌 “대한조경단(大韓肇慶壇)”은 나라가 망할 때쯤에서야 자신을 드러냈다. 이 묘지 발견자는 벼락감투를 쓰고 영광군수가 되었다고 한다. 나아가 이 묘지로 인하여 승차한 당상관만 일곱이 넘었다고 한다.
정감록(鄭鑑錄)의 근원지가 된 천마산
이렇게 전주의 건지산과 천마산에는 목자득국(木子得國)의 조선 오백년 왕업과 더불어서 정씨 팔백년 왕업을 예시하는 정감록(鄭鑑錄)의 전설의 땅이다. 여덟 왕조 중 선천시대에 나타난 오백년 왕업의 기틀과 더불어서 후천의 팔백년 왕업의 기틀이 서린 건지산과 천마산을 올라가 봄 직하지 않은가? 이 두 전설의 배후를 따르다 보면 대한민국의 산맥 백두대간과 금남호남정맥 그리고 만덕산에서 뻗어온 전주의 주산(主山)이자 진산(鎭山)인 해발 일백미터 남짓의 건지산(乾止山)에 닿는다.
2026년 5월 12일 새벽에 기린각 태화전에서
통천지제일원 원통산인 설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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